2023년 3차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소란스러웠던 과정과 달리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많은 평론가들이 당대표 선출을 위한 결선투표가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친윤계 김기현 의원이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조기종료됐다. 돌풍을 일으켰던 친이준석계 후보 천아용인은 아쉽게도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전당대회의 최종결과와 향후 정국에 관해 알아보자.
대통령실 당무개입 3가지 의혹
지난 2023년 3차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개입을 우려했다. 일단 ㉮ 차기 당대표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전의원이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하자, 경선룰이 갑작스럽게 바꿨다. 기존 당원 70% + 여론조사 30%에서 당원 100%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민의힘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나경원 전의원이 치고 나갔다.
㉯ 유력 당대표 후보로 손꼽히던 나경원은 당연히 출마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초선의원 48명이 연판장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윤핵관들에게 무자비한 린치에 가까운 공격을 당하자,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국민의힘 당원들은 윤석열이 사실상 김기현을 당대표로 픽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현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이번에는 안철수 의원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권 탈환의 1등 공신이다. 만약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안철수가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과장이 아닌 것이 윤석열은 당시 이재명 후보에 맞서 역대 최소 득표차인 0.73%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이후 안철수는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으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 윤핵관들은 안철수가 여론조사 1위로 치고 나가자,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렸다. 막말로 안철수의 사상에 진짜 문제가 있다면, 그와 연대를 했던 윤석열은 도대체 뭐가 된단 말인가? 친윤계가 권력에 취해 있는 것 같다는 소리가 대번에 나왔다. 그러니 비윤계의 수장으로 몰아세워 낙마시켰던 나경원을 찾아가 연대를 요청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가 대번에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를 주저앉히기 위한 초유의 일들이 벌어졌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정말 당무개입을 안했다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불과 몇개월 만의 준비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은 당내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일정
· 예비경선 → 합동연설, TV 방송토론 → 본경선 → 결선투표
(※ 단, 본경선에서 과반을 달성한 후보가 없을 경우 1:1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또 다른 변수는 천하람 당협위원장의 등장이었다. 뒤늦긴 했지만, 예비경선 컷오프에 통과한 후보들이 부랴부랴 공약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동안 윤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두고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한심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나마 조금은 생산적인 미래 담론을 토론하는 순간들도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전당대회를 통해 친윤계는 국민의힘 지도부를 독식했다. 당대표를 포함 최고위원 4명과 청년최고위원 1명 모두가 친윤계다. 개인적으로는 보수의 강점이자 한계인 상명하복 문화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아무리 윤석열 정권이 집권 1~2년차의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두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다양성이 무너질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당시의 전당대회는 이례적으로 55.1%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조직력이 선거를 좌우했다.
절망과 동시에 희망도 느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수는 방향이 정해지면 좌고우면 안하고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럽게 온갖 적폐가 쌓여, 권력형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탈북자 출신의 태영호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이라는 플랫폼 자체는 상당히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말로 전당대회 예비경선에서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신의한수' 신혜식, '건희사랑' 강신업 등과 같은 유튜버, 팬클럽 회장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어디까지 정치가 희화화될지 걱정이 많았다. 그나마 이들이 예비경선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컷오프된 만큼, 아직은 나름의 자정능력이 있음도 확인했던 것 같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결과
① 김기현
김기현(1959년)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판사로 근무했다. 판사출신이라 그런지 성향이 온건한 편인데, 이는 장점인 동시에 약점으로 꼽힌다. 물론 울산에서 무려 4선을 일궈냈을 정도로 해당 지역에서 만큼은 최강자다. 물론 울산 자체가 보수 텃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권주자로서의 경쟁력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 출마하면, 당장에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다.
역대급 최약체로 구분되던 김기현은 윤핵관의 적극적인 푸시를 받아 당대표가 됐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제기한 땅투기 이슈가 불거졌지만, 결국 과반이 넘는 득표율을 이끌어냈다. 이로서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이끌게 됐다. 아마도 당원들은 이준석 퇴출이라는 진통을 겪었던 만큼 개혁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것 같다. 그렇게 당분간은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거라 예상됐지만, 같은 해 하반기 재보궐선거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함에 따라 쫓겨났다. 이후 5선의원으로 당선된다.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결과
· 당선 : 김기현(52.93%)
· 낙선 : 안철수(24.47%), 천하람(14.98%), 황교안(8.72%)
② 안철수
안철수(1962년)는 서울대 의학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으며, V3 백신을 개발한 안랩의 창업자다. ㉮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 2022년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에게 후보를 양보한 철수의 아이콘이다. 다만, 그것만으로 안철수를 폄하하기엔 그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제3지대를 성공시킨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한명이다.
안철수는 전당대회를 끝까지 완주했고, 지지율 2등(24.47%)을 달성했다. 이후 22대 총선에서 분당구(갑) 지역구에서 4선의원이 되는 데 성공한다.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게 천운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안철수의 한계는 그동안 오랜 기간 정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안계로 꼽을만한 세력이 아직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2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 논의에서 조차 빠졌을 정도로 당내 기반이 너무 약하다.
③ 천하람
천하람(1986년)은 고려대 법학과, 동대학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대구 출신임에 불구하고, 연고가 전혀 없는 전남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갑)에 출마해 낙선했다. 본인 스스로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출마했던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 전대통령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만큼 스토리 자체는 굉장히 좋다. 이후 해당 지역구의 당협위원장을 맡게 된다.
사실 천하람의 당대표 선거 출마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유승민, 나경원이 경선을 포기함에 따라 온건한 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를 포기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천하람은 이준석계로 구분된다. 그만큼 개혁적인 성향이 강하며, 젊은 층에 어필이 가능하다. 참고로 본인 스스로는 계파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정치성향 자체가 워낙 유승민, 이준석과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묶인다.
이준석이 너무 넘사벽 천재라 그렇지, 천하람 역시도 굉장히 똑똑하고 순발력이 좋다. 논리적이고 시원하다는 점에서 이준석과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따뜻하고 원만해 보인다는 차별점도 있다. 쉽게 얘기해 이준석은 다루기 힘들다는 이미지 때문에 강력한 지지자와 안티가 있는 반면, 천하람은 순둥한 이미지 덕분에 더 큰 포용력이 느껴진다. 실제로 천하람은 이준석의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로 성장한다.
전당대회 당시 비윤계의 입장에서 천하람은 구미가 당기는 카드였다. 솔직히 그의 발언을 들어보면 속이 뻥 뚫린다. 하나같이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정도를 걷고 있음이 느껴진다. 또한 그가 당대표가 된다면, 이준석의 조언을 직접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는 국민의힘이 다가올 2024년 22대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참고로 이준석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뒤를 잇는 검증된 선거전문가다.
보수진영은 다가올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하는 것을 가장 걱정했는데, 김기현과 안철수로는 승리가 쉽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솔직히 천하람의 약점은 정치경력이 짧아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 밖에 없다. 반면, 싸가지 있는 이준석이라는 총평을 들을 정도로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한 강점이다.
다만, 천하람이 당대표에 당선된다면, 시스템 공천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하게 계파를 고려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친윤계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관건은 한동훈이다. 현재 보수진영에는 차기 대통령깜이 없는데, 그나마 한동훈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한동훈도 스스로가 차기대권에 생각이 있다면,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친윤계가 많이 생존해 주길 바랄 수도 있다. 이후 천하람은 이준석과 함께 개혁신당 창당에 나섰으며, 의원배지도 달게 된다.
④ 황교안
황교안(1957년)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검사 생활을 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등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황교안은 당대표 당선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담론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유야 어쨌든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의 참패를 진두지휘했던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당시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정론으로 받아들이는 세력은 태극기부대 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에 갇혀있는 이미지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게 중요한데,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단일화를 위한 협력체로서는 여전히 귀추가 주목됐다. 국민의힘 당내 극우세력은 대략 10%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 예상하는데, 누군가를 당선시키기에는 충분한 파괴력이 있다.
친윤계가 미는 김기현의 지지율이 계속 지지부진하다면, 어떻게든 황교안과 단일화를 하지 않을까 싶다. 황교안 역시 다가올 22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노리고 있다면, 김기현과의 단일화가 땡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초라한 지지율(8.72%)을 기록하며, 정치 신인인 천하람에게 마저 뒤졌다. 이제 정치생명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결과
① 김재원
김재원(1964년)은 서울대 법학과, 동대학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모두 통과한 찐천재 중에 하나이며, 검사로 활동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의원이 됐으며, 친박계로 활동했다. 18대 총선에서는 친박계 학살 때문에 공천을 못받았는데, 19대 국회에는 재선의원으로 입성한다. 20대 총선에서도 공천을 못받았지만, 재보궐선거를 통해 3선의원이 됐다.
이후에도 친박계라는 꼬리표와 극우로 돌아선 행보 때문에 계속 공천을 못받았다. 그래도 TK 대표주자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조수진 의원과 함께 이준석 지도부에 이어 또다시 최고위원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이후 2024년 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최고위원으로 당선된다.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결과
· 당선 → 김재원 : 17.55%, 김병민 : 16.10%, 조수진 : 13.18%, 태영호 : 13.11%
· 낙선 → 민영삼 : 11.08%, 김용태 :10.87%, 허은아 : 9.90%, 정미경 : 8.21%
② 김병민
김병민(1982년)은 경희대 국제통상학부 학사, 동대학 경영학 석사와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2010년 5회 지방선거를 통해 구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종편에서 패널로 맹활약 중이며, 이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면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21대, 22대 총선에서 광진구(갑) 지역구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모두 낙선하고 만다. 현재는 오세훈 시장의 최측근으로 등극하며,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일하고 있다.
③ 조수진
조수진(1972년)은 고려대 불어불문학 학사, 동국대 신문방송학 석사, 동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정치부와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며 정치권의 많은 인사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으며, 김기현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으로 활약했다. 다만, 발언수위가 워낙 아슬아슬하고 좌충우돌하는 캐릭터인지라 뭔가 가볍다는 평가가 많다.
④ 태영호
태영호(1962년)는 북경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북한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다. 2016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로 일하다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강남구(갑)에 전략공천받아 의원이 됐다. 진정성 넘치는 의정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고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22대 총선에서는 구로구(을) 선거구에 나섰지만 패배한다. 현재는 차관급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임명됐다.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선거결과
①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장예찬(1988년)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음악학교(평생교육원)에서 재즈드럼을 공부했지만, 중퇴했다. 무협소설, 웹소설 작가로 활동했으며, 종편채널에서 친윤계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 청년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압도적인 득표율(55.16%)로 청년최고위원에 당선된다. 22대 총선에서 부산시 수영구 공천을 받지만, 예찬대장경 등이 문제가 되어 공천권을 박탈당했다. 이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지만, 낙선하고 만다.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청년최고위원 선거결과
· 당선 : 장예찬(55.16%)
· 낙선 : 이기인(18.71%), 김정식(13.66%), 김가람(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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