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체결됐던 제3지대 빅텐트가 깨졌다. 이낙연 개혁신당 공동대표가 분당을 선언함에 따라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된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성공 여부, 가장 큰 변수가 됐던 호남 유권자들의 특징에 관해 알아보자.
제3지대론을 옹호하던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음력설 직전에 단행됐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합당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반환점을 돌았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다만, 뭔지 모를 찝찝함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진심으로 기분 좋은 게 아니라 기분이 좋아야만 된다는 강박이 공존했달까?
실제로 기존 개혁신당 내 자강파들은 개혁을 이끌어갈 주요 멤버들인 이준석 당대표와 천아용인(김용남) 등이 아직 젊고, 이미지가 신선한 만큼 급하게 외연 확장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30년 이상을 정치 최일선에서 뛰어야 될 주역들인 만큼 이번 총선에서는 대략 5~10석 정도만 확보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개혁신당이 궁극적으로는 지나치게 우클릭된 국민의힘을 대체할 보수의 적자가 되길 원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분당과 관련해 이준석계와 이낙연계가 주장하는 바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다. 양측 모두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다. 다만, 각자의 개성이 판이하게 다른 탓에 화학적인 케미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혁신의 속도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를 보였다. 이준석은 다소 거칠더라도 급진적인 개혁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면, 이낙연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긴 하지만 좌고우면 하며 신중하게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이는 비록 승차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기동력 좋은 라보를 타고 다니는 이준석과 안정적이긴 하지만 가성비가 떨어지는 카니발을 타고 다니는 이낙연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상을 유지해야 되는 안정적인 국면에서는 이낙연 특유의 신중함이 빛을 발하겠지만, 당장에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에서는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선거와 관련된 전권을 이준석에게 통 크게 양보했다면, 이낙연의 정치적 위상이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끝내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공천으로 대표되는 주도권 경쟁에 집착하는 바람에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낙연의 정치적 생명마저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실제로 새로운미래는 어부지리로 당선에 성공한 김종민 의원을 제외하고는 지역구 선거에서 전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낙연 본인마저 광주시 광산구(을)에서 위장탈당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민형배 의원을 상대로 겨우 13.85%라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대급 패배를 당했다.
결과적으로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불과 10여일 만에 합당이 아닌 분당을 선택했다. 아직 법적으로 합당을 했던 게 아닌 만큼 별다른 절차는 따로 없었다. 물론 각자가 아쉬운 점들이 많았을 테지만, 모두가 다당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각자의 정당에서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하면 좋은 케미를 선보일 수도 있다.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분당 5가지 관전 포인트
① 배복주 입당은 애초에 불가능
배복주는 전장연의 불법 시위를 주도해 왔다. 상식을 우선시하는 정당임을 표방했던 개혁신당의 입장에서는 납득 안되는 행보를 이어왔던 그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논리로 소수의 입장도 배려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준석이 낙인과 혐오,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얼핏 보면 맞는 소리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의견을 경청해야 된다는 명분 하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전광훈 목사를 개혁신당에 영입한다면, 새로운미래 측에서는 반대하지 않을 건가? 전장연은 그들이 원하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불법을 반복적으로 자행했으며, 그 중심에는 배복주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② 수도권 선거 포기?!
지역구 의원을 당선시키고자 했던 이준석의 입장에서 배복주 영입카드는 선거공학적으로 필패카드였다.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20~30대 청년들의 입장에서 전장연은 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는 불법단체에 불과하다. 즉,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장연은 절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폭력적인 불법시위를 자행했다. 오죽했으면 다른 장애인 단체가 전장연의 시위를 막아섰을 정도였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용객들 대다수가 평범한 서민들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혹시라도 경쟁 후보가 배복주 입당을 근거로 개혁신당이 전장연을 후원하고 있음을 주장한다면, 과연 유권자가 개혁신당에게 표를 줄 수 있을까?
③ 대안신당당원모임에게 잡아 먹힌 새로운미래
이준석은 합당 과정에 있어 상식적인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노회찬의 정의당까지 라고 밝혔는데, 아마도 박원석 전의원을 고려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새로운미래 자체가 정의당 내 탈당세력인 대안신당당원모임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배복주를 필두로 한 대안신당당원모임이 새로운미래 내 주요 계파로 자리 잡았기에, 당장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던 이낙연, 김종민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다가 이낙연, 김종민처럼 정치내공이 꽤나 깊은 사람들이 이런 패착을 뒀던 것일까? 아무래도 조급한 마음과 함께 이들의 지지기반 자체가 전장연이 불법시위를 벌이고 있는 수도권이 아닌 전라도와 충청도인 탓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수도권 시민들이 전장연에게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체감을 못했다고 본다.
④ 다음 타겟은 류호정?!
다음 타겟은 류호정 전의원이 될 거라는 목소리도 있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이후 개혁신당은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차별화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류호정 자체가 생각보다 꽉 막힌 타입이 아니다. 개혁신당으로 합당하기 전에 세번째권력에 머물던 당시 무려 여성 징병제를 외치기도 했다. 페미들의 대장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비해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준석은 류호정이 본인과 천아용인 등과 함께 어울리면서, 생각의 변화가 있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녀가 정의당의 뒤통수를 쳤듯이 언젠가는 개혁신당의 뒤통수도 칠거라 예상했다. 류호정은 개혁신당의 공천을 받아 성남시 분당구(갑)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다. 하지만 선거비 보전을 하나도 못받는 상황까지 몰리자, 결국 제3지대는 실패했다며 개혁신당을 비난하고 출마를 포기했다.
애초에 그녀는 롤 대리게임, 이중당적 등과 같은 흠결이 너무 많은 탓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정치생명 자체는 길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페미로서의 정체성이 있는 만큼 나름의 쓰임새가 있을진 몰라도, 큰 정치인이 되기엔 애초에 적합한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⑤ 호남 유권자들은 얼마나 반발할까?
호남 유권자들은 굉장히 개방적이다.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만 높다면, 무려 김종필의 자민련과 선거연대를 했던 김대중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경상도 출신의 노무현과 문재인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심지어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안철수 대망론이 떠오르자 국민의당을 원내 제3당의 반열로 띄워주기도 했다.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정권을 차지하지 못했던 서러움이 큰 지역이다.
더불어 한켠에서는 호남 출신의 큰 정치인에 대한 갈망도 큰 편이다. 실제로 김대중 전대통령 이후로는 호남 출신의 눈에 띄는 정치인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시점에서 가장 큰 호남 정치인인 이낙연에 대한 동정표가 쏟아질 수도 있었다. 마치 내가 욕하는 건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는 건 못참는 모양새랄까?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공천과정에서 친명계와 친문계 간에 엄청난 알력다툼을 벌이며, 연일 잡음이 쏟아져 나왔다. 만약 부당한 방식으로 컷오프된 친문계 인사들을 잘 독려해 새로운미래로 합류시켰다면, 호남에서 전면전을 펼쳤을 때 승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선에서 떨어진 친문계와 비명계들이 더불어민주당에 남는 선택을 하면서, 새로운미래는 동력을 잃고 말았다. 결국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겨우 1.7% 밖에 획득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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