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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제도

필리버스터 뜻, 무제한 토론 신청조건, 무력화 방법 (+실효성 없다?!)

by 에디터 Y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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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보장된 소수당의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뜻한다. 한국은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최근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벌이면서 필리버스터 정국이 펼쳐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신청조건과 이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알아보자. 정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될 것 같다.

 

필리버스터 뜻, 국내 도입의 역사

먼저 필리버스터(filibuster)의 어원을 살펴보자. 네덜란드어에서 유래된 필리버스터는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해적, 약탈자를 의미했다. 하지만 1845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주와 네브래스카주 신설에 관한 법안을 막기 위해 이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 현재는 정치적인 용어로 변질됐다. 참고로 필리버스터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무제한 토론은 그중 한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무제한 토론만 인정되는 만큼 사실상 동의어라고 봐도 된다.

 

초창기 대한민국 국회에는 의원의 의사진행 발언에 있어 딱히 시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었지만, 필리버스터에 대한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별다른 시도가 없었다.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4년 6대 국회에서 김대중 의원은 한일협정 협상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김준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저지를 위해 장시간 의사진행 발언을 펼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

 

놀라운 점은 당시 김대중이 거의 떠밀리다시피 발언대에 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언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으며, 실제로 단 한장의 원고도 없었다.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도 김대중이 1시간 넘게 발언하기 힘들거라 생각해서 그런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은 무려 5시간 19분 동안이나 체포동의안 처리가 부당함을 다양한 근거들을 들어 세세하게 밝혔다. 이에 민주공화당이 한일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1969년 7대 국회에서 신민당의 박한상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도하는 3선 개헌에 반대해 상임위에서 10시간 5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펼쳤다. 이후 1973년 민주공화당은 국회법 개정을 통해 의원의 의사진행 발언에 대한 시간제한을 두면서, 더 이상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국회 내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며, 폭력이 난무하는 동물국회로 전락하자, 결국 2012년 18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을 통해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할 때 필리버스터도 함께 부활시켰다.

 

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 특징, 신청조건, 무력화 방법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무제한 토론만을 필리버스터로 인정하며, 국회의원 재석인원 1/3(=100명) 이상이 요구하면 실시할 수 있다. 의원 1명(당) 단 한차례만 토론할 수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는 발언 도중에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주호영 의원은 기저귀를 차고 발언대에 섰다는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사례들을 살펴보면, 국회의장의 허락을 받아 1~3분 정도 화장실에 가는 것은 허락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국회 필리버스터 특징
· 무제한 토론만 가능하다.
· 의원 1명(당) 단 한차례만 토론이 가능하다.
· 안건과 관련된 내용만 발언이 가능하다.
· 토론자가 있다면 최소 24시간은 보장된다.
· 회기가 끝나는 동시에 필리버스터는 종료된다.
· 같은 안건으로 또다시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고로 미국 같은 경우에는 필리버스터를 하는 와중에 안건과 상관없는 발언을 해도 상관없지만, 한국은 반드시 안건에 관한 내용이어야 된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강제해 퇴장시키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러한 규정 때문인지 미국처럼 아예 대놓고 성경책이나 소설책, 동화책을 읽는 경우는 없다.

 

 

필리버스터는 ㉮ 토론자가 더 이상 없는 경우, ㉯ 회기가 종료된 경우, ㉰ 국회의원 재석인원 3/5(=180명) 이상이 찬성하면 종료시킬 수 있다. 다만,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결시키는 것은 다수당의 횡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실제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이나 다름없는 만큼 강제로 종결시키면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는 것을 각오해야 된다. 그래서 헌정사상 거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지난 2020년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이 국정원법 개정안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를 펼쳤다. 당시 윤희숙 의원은 12시간 4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펼쳐 국내 최장시간 기록을 경신했다. 오후 3시 24분에 시작해 다음날 오전 4시 12분에 발언대에서 내려왔다. 이를 기점으로 윤희숙은 여론의 엄청난 주목을 받아 인지도를 급격하게 높이게 된다. 이후 2024년 22대 국회에서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의 박수민 의원이 15시간 50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펼쳐 기록을 세웠다.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필리버스터를 강제종료시켰다. 당시 표결은 딱 180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는데, 박병석 국회의장이 표결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보통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켜야 되기에 아예 기권을 하거나 무효표를 만드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의장도 투표권이 있으므로 투표를 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박병석의 1표가 판결을 바꿨기에 반발이 컸던 것 같다.

 

박병석 21대 전반기 국회의장

 

참고로 필리버스터가 실시되면, 강제종료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24시간만큼은 보장해 준다. 따라서 강제종료를 원한다면, 필리버스터가 시작하고 24시간이 지난 뒤에 이를 신청하는 게 모양새가 그나마 낫다. 임시국회가 최대 30일 동안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필리버스터는 사실상 최대 30일 동안 가능하다. 물론 정기국회에서도 펼쳐질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최대 100일 동안 열린다는 점과 예산안 자동부의 일자가 못박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장기간 끌고 가긴 힘들다.

 

현시점에서 필리버스터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회기가 끝날 때까지 안건의 표결을 지연시키더라도 해당 안건이 다음 회기 때는 표결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안건에 대해서는 또다시 필리버스터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감안해야 된다.

 

정의화 19대 후반기 국회의장

 

개인적으로는 2016년 19대 국회 말기에 펼쳐졌던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무리하게 본회의로 부의시켰던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기 위해 총 38명의 의원들이 참여했으며, 무려 192시간 52분이나 지속됐다. 첫 주자로 나섰던 김광진 의원, 당시 최장시간 기록(12시간 31분)을 갱신했던 이종걸 의원, 눈물을 흘리며 노래로 토론을 마무리했던 강기정 의원까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비록 테러방지법 상정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협상을 통해 개정할 수 있는 시간마저 놓쳤다는 점에서 실효성은 떨어졌지만, 이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적인 수준의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 19대 대통령 선거, 7회 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압승을 이어갔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무려 9일 동안이나 펼쳐진 필리버스터였던 만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이색적인 장면들이 연출됐다. 4시간씩 의사진행을 맡던 국회의장, 국회부의장 2명이 피로감을 호소함에 따라 상임위원장들이 돌아가며 진행하기도 했다. 애초에 무제한 토론인 만큼 의원들이 토론자에게 질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방청객들은 불가능하다. 만약, 토론자가 발언할 때 자꾸 껴들면 의사진행 방해에 해당되어 본회의장에서 쫓겨난다.

 

강기정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 어떤 법안도 본회의 표결을 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인데, 필리버스터가 걸리지 않는 법안 같은 경우에는 통과가 가능하다는 국회의 유권해석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2019년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은 본회의에 부의된 199개의 법안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적도 있다. 여기에는 이들이 발의했던 50개의 법안도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선거법 개정안 등의 통과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전략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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