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 가벼워진 것 같다. 과거에는 탄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사실상 일상 용어가 돼버렸다. 문제는 이렇게 국회가 탄핵정국으로 끌려가면 끌려갈수록 민생이 도외시된다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는 검사, 판사, 장관, 방통위원장 등의 탄핵조건과 절차를 알아보자.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통해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견제하고 있다. 이를 현실에서 바라보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정치인)에 대한 통제는 국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서 한다. 그리고 이들 국민들에 대한 통제는 사법관료시스템이 행정적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사법관료시스템은 정치인들이 민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선순환이 완성된다.
문제는 스마트폰의 발전과 인권에 대한 강조로 인해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수많은 법조인들이 국회에 입문함에 따라 정치인들의 권한 행세가 이전보다 강해진 반면, 사법관료시스템의 권한은 이전보다 축소됐다는 것이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에는 이 사법관료시스템을 지탱해 줬던 경찰, 검사, 판사들의 힘이 너무 강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권위가 너무 심하게 무너지면,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사적제재가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오죽 경찰의 수사를 못믿었으면 유튜브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을까?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으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벌어졌던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의 처단에 나섰을까? 솔직히 굉장히 통쾌하긴 하지만, 사적제재 자체가 안고 있는 부작용도 상당한 만큼 내심 걱정되기도 한다.
검사, 판사, 장관, 방통위원장 탄핵 절차 총정리
2024년 7월, 총 4명의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참고로 검사, 판사, 장관, 방통위원장 등의 탄핵소추안은 ㉮ 국회의원 재석인원 1/3(=100명)이 동의하고, ㉯ 재석인원 과반수(=151명)가 찬성하면 의결된다. 통과된 탄핵소추안은 즉시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며, 재판관들의 탄핵심판을 기다려야 된다. (참고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결정만큼은 반드시 180일 내에 해야 된다.)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피청구인의 권한행사는 즉시 정지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각하되거나 기각으로 결정되면, 다시 권한행사를 할 수 있다. 참고로 각하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부적법하다는 판단 하에 재판 자체를 안하는 것이며, 기각은 재판을 제대로 해봤는데 직무수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없는 경우에 취해진다. 물론 인용되는 경우에는 바로 파면이 진행된다.
지난 2023년 더불어민주당은 현직검사(안동환, 손준성, 이준성)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 중에서 안동환은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대법원에서 공소권 남용이 인정됐기 때문에 탄핵이 될 거라는 여론이 우세했음에도 헌재는 기각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아직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가 아직 안나오긴 했지만, 손준성과 이정섭 역시 기각될 확률이 높다.
2013년 검사 탄핵소추안 가결 대상
· 안동환 : 유우성 간첩조작사건 보복기소 혐의
· 손준성 : 고발사주 혐의
· 이정섭 : 처남 X약 의혹 뒤봐주기 의혹
2014년 검사 탄핵소추안 가결 대상
· 강백신 : 위법적인 언론사 기자 압수수색 의혹
· 김영철 : 국정농단 수사 당시 장시호 위증교사 의혹
· 박상용 : 대복송금 수사 당시 이화영 위증교사 의혹
· 엄희준 :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재판 당시 위증교사 의혹
2024년 7월 더불어민주당은 현직검사(강백신, 김영철, 박상용, 엄희준)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번에는 여론의 반응이 더욱 안좋다. 지난 탄핵에서는 안동환, 손준성에 대한 대법원의 재판결과, 공수처의 수사결과가 각각 나온 상태였기에 그나마의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의혹들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엄희준의 탄핵 추진은 정말 놀랍다. 애초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정치자금 수취로 대법원에서 2년형 확정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탄핵소추안에 명단을 올린 7명의 검사 중 안동환, 김영철을 제외한 무려 5명이 현재 이재명 의원을 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에 이원석 검찰총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재명 방탄 탄핵을 비판했다. 실제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1심이 지난 2024년 6월에 나왔는데,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9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만큼 더불어민주당이 급하게 추진한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정당을 사적으로 이용해 공적기관인 검찰의 검사를 탄핵했다는 점에서 많은 평론가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개인적으로는 검사가 정말 잘못한 게 있다면, 탄핵을 추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검사를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 현재 입법부와 공수처가 유이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탄핵을 하려면, 절차를 제대로 밟는 게 맞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수처에 고발해 수사를 받게 했어야 됐다.
대부분의 의혹들이 이들 검사들의 권한 오남용을 지적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탄핵이 남발하면, 대중의 입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도 권한을 오남용하고 있다고 똑같이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관용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정말 몰랐을까 싶기도 하다. 오히려 이재명을 향한 수사를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 욕먹더라도 추진했어야 됐던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검사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권한행사가 중단되기 때문에 수사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후임 검사가 해당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까지 굉장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노렸다는 의견도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 검사들을 법사위에 불러 청문회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법사위에는 이재명 변호인단 출신 국회의원 5인방 중 2명(박균택, 이건태)이 배치되어 있다. 결국 피고인의 변호사가 검사를 심문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재명은 수원지법에서 받고 있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대장동 사건을 재판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에 병합해 달라고 요청했다. 표면적으로는 너무 멀어서 출석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상 이화영에게 엄벌을 내린 재판부를 기피했다고 보는 게 맞다. (참고로 해당 토지관할병합심리 신청은 기각됐다.) 다음은 판사도 탄핵할 수 있다는 관측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게,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일극체제가 완성된 만큼 그 누구도 그를 견제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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