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에서 강대강 대치를 한 게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과거에는 동물국회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나마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을 계기로 폭력적인 사태 자체는 많이 사라졌는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입법의 난이도가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나마 안건신속처리제도, 일명 패스트트랙이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패스트트랙 도입 배경, 뜻, 절차
18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은 176석으로 국회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 국회의원 재석인원의 과반수라는 콤보를 사용해 필요한 법안들을 손쉽게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를 일명 날치기 통과라 부른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 입법 과정 자체는 아래와 같이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입법 과정
법안 발의 → 상임위 소위원회 심사 → 상임위 심사 → 법사위 심사 → 본회의 표결 → 대통령 공포
하지만 각 단계별로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처리되지 않은 채 그냥 계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여야 간에 대립이 심한 쟁점법안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이용하면, 모든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어 바로 본회의 표결로 직결이 가능했다. 그만큼 국회의장의 힘이 막강했던 것이다. 참고로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의 표결로 선출되는 만큼 사실상 다수당에서 선출되며, 매직넘버는 151석이다.
의석수 151석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법안이 본회의에서 ⓐ 국회의원 재석인원 과반수(=151명)의 출석과 ⓑ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151석을 자치한 정당은 사실상 입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위치에 섰다고 봐도 됐다.
문제는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더해갈수록 당장에 입법 권력을 갖추고 있는 다수당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을 날치기 통과하려는 시도가 잦았다는 것이다. 소수당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장의 좌석을 둘러싸고 의사진행 자체를 방해해야만 했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감정은 격해졌고, 끝내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18대 국회의 끝자락인 2012년 2월에 등장한 게 바로 국회법 개정안인 국회선진화법이었다. 국회선진화법은 일명 몸싸움 방지법이라고 불리며, 파행적으로 운영되던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각종 방안들이 담겨있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 강화, 필리버스터 도입, 안건조정위원회 운영, 폭력적인 의사진행 방해금지, 패스트트랙 도입, 예산안 자동부의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중에서도 핵심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국회선진화법은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합의해서 입법시켰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왜 자신들의 권한을 포기했을까 싶은데, 이는 당시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2012년은 이명박 정부 4년차로 대통령 지지율이 24%까지 폭락했을 정도로 민심이 이반됐었다. 당연히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곧 있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무리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노력을 해도 과반을 차지하기 힘들거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당 내 야당을 자처했던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전략이 성공하면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다 죽어가는 선거를 살려낸 박근혜는 당시를 계기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으며, 확실한 차기 대권주자로 올라서게 된다. 심지어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승리를 확인한 상태에서도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켜 줬다. 아무래도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여전히 반년 이상이 남아있는 만큼 국민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국회선진화법에 막혀 그 어떤 것도 손쉽게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던 것이다. 그래서 2016년 1월에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같은 해 4월에 있었던 20대 총선에서 과반은커녕 겨우 122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이 되는데 실패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국회선진화법의 가장 큰 문제는 여야의 대치가 심하면 심할수록 국회가 아예 일을 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입법 과정에 있어 각 단계별로 심사와 표결을 언제까지 끝내야 된다는 기한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그래서 실제로 심사와 표결을 아예 안한 채, 그냥 쌓아두는 사례가 급증했다. (참고로 이를 식물국회라 일컫는다.)
사실 국회선진화법도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우려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통해 보완하려 했다. 패스트트랙은 법안처리가 무한정 표류되는 것을 막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제도로, 각 단계별로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통과되는 것이 핵심이다.
패스트트랙 처리 기간
상임위 심사(최대 180일) → 법사위 심사(최대 90일) → 본회의 부결(최대 60일) → 이후 본회의 즉시 표결
패스트트랙에 태운 법안은 상임위 심사를 최대 180일 동안 받으며, 이후에는 자동으로 법사위로 회부된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는 최대 90일 동안 받으며, 이후에는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본회의에서 안건을 심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부의 기간을 최대 60일 동안 보내면, 바로 본회의에 상정되어 표결에 들어간다.
무조건적으로 본회의 표결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패스트트랙은 사실상 입법치트키나 다름없다. 다만, 막강한 권한인 만큼 그 조건이 훨씬 더 까다롭다. 일반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정족수가 151명이라면, 패스트트랙의 매직넘버는 180명이다. 패스트트랙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석인원의 과반수(=151명) 혹은 해당 상임위 재석인원의 과반수가 요청해야 되며, 국회의원 재석인원의 3/5(=180명) 이상 혹은 해당 상임위 재석인원의 3/5가 찬성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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