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퇴임 이후 발표한 회고록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두고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밝혀 문제가 됐다. 이에 대통령실에서는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해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당시에 통화를 나눴던 박홍근 의원이 관련 내용을 기록해 둔 메모를 공개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더욱 커졌다. 관련 사건을 알아보자.
국회의장은 의전서열 2위에 달하는 입법부의 수장으로 임기를 마친 이후에는 정계은퇴를 하는 게 보통이다. 지난 21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맡았던 김진표도 관례에 따라 현재는 사실상 은퇴를 한 상태다. 그리고 그동안의 정치 역정을 담은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척해 왔는가'를 2024년 6월 27일에 출간했다.
김진표 프로필, 행치행보 총정리
김진표(1947년)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행정고시를 통해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재무부 소속이었으며,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만큼 일반직 공무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 봤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권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으며, 결국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이 된다. 이후 21대 총선까지 지역구인 수원시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하며, 21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맡았다.
단 한번도 민주당을 탈당한 적 없는 진성 민주당원이지만, 정치 성향 자체는 중도에 가깝다. 따라서 당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움직일 때마다 우클릭을 통해 안정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랜 기간 동안 관료 생활을 해서 그런지 발언과 행동이 매우 신중하며, 좌우를 떠나 많은 동료 의원들이 존중을 표시했다. 그런 그의 회고록에 등장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김진표 회고록 파장 총정리
① 김진표 회고록이 쏘아 올린 작은 공
관련 내용은 회고록 제10부 윤석열 정권 편에 등장하며, 전문은 아래와 같다. 지난 2022년 12월 5일 국가조찬기도회 당시 김진표는 윤석열과 독대할 기회가 있었으며, 이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열은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으며,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극우 유튜버들의 방송을 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음을 밝혔다.
김진표 국회의장 회고록 일부분
윤석열 대통령은 내 말이 다 맞으나, 자신이 이태원 참사에 관해 지금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자신은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 이상민 장관을 물러나게 한다면 그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얘기를 이어갔다.
참고로 무려 159명의 청년들이 압사당했던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에 발생했다. 따라서 당시의 독대는 한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참사 직후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다양한 음모론을 펼쳐왔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꼽아보면 ⓐ 토끼머리띠를 쓴 사람이 '밀어'라고 외쳐 압사의 도화선을 당겼다, ⓑ 각시탈을 쓴 사람이 아보카도 오일을 길거리에 뿌려 도로를 미끄럽게 만들었다, ⓒ 민주노총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참사를 일으켰다 등이 있었다.
사건 발생 사흘 뒤에 514명으로 구성된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발족됐으며, 총 74일 동안 수사했다. 이후 2023년 1월 13일에 발표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위에 언급된 의혹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가 됐다. 현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구속송치됐으며, 행안부와 서울시 등에게는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꼬리 자르기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이상민 탄핵을 추진했다. 참고로 국무위원 탄핵은 ㉮ 국회의원 재적인원 1/3(=100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되며, ㉯ 재적인원 과반수(=151명) 이상이 찬성해야 된다. 이상민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이상민은 여전히 행안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② 대통령실 대응
물론 대통령실에서는 해당 발언에 관해 즉각적인 해명에 나섰으며, 입장은 아래와 같다. 해당 발언 자체를 아예 없었던 것이라고 하기엔 찝찝한 게 있었는지, 그냥 어떻게든 둘러대는 모양새였다. 물론 이를 폭로한 김진표가 진보진영 인사인 만큼 보수 측에서는 공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수 있다.
대통령실 입장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나눴던 얘기를 멋대로 왜곡해 세상에 알리는 행위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은 당시 관계기관 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혹을 전부 조사하라고 지시했었다. 특히 차선 한개만 개방해도 인도의 인파압력이 떨어져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도, 차선을 열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에는 이태원특별법도 과감하게 수용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진표가 기본적으로 굉장히 신중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되레 중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해야 된다. 더불어 아무리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전직 대통령도 아닌 현직 대통령에 대한 발언을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썼다는 게 솔직히 상상이 안된다. 즉,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내용이 이슈가 되자, 박홍근이 이와 관련된 메모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③ 박홍근 메모 등장
박홍근은 당시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었던 만큼 김진표와 자주 통화를 했는데, 관련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이를 태블릿 PC에 메모해뒀다고 한다. 참고로 해당 메모는 날짜 기록이 담겨있는 파일인 만큼 이후에 조작됐을 가능성은 없다. 메모는 2022년 12월 5일에 최초작성됐으며, 마지막 수정일은 하루 뒤인 12월 6일이다.
박홍근 의원 메모
이태원은 먹거리(동남아 식당 조금)나 술집도 별로 없고 볼거리도 많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게 이해가 안감. MBC, KBS, JTBC 등 좌파언론들이 사고 2~3일 전부터 사람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 내보낸 이유 의혹 (지인 부녀도 기사 보고 뒤늦게 구경하러 갔다가 사고)
사건의 의혹(우발적 발생이 아닌 특정 세력이나 인사에 의한 범죄성 사건의 가능성을 의심으로 갖고 있는 상황)을 먼저 규명하지 않고 장관 사퇴시키면, 혹시 나중에 범죄 사실 확인될 경우 좌파 주장에 말리는 꼴이니 정치적 도의적 책임도 수사 끝난 후에 지게 해야.
해당 메모는 회고록에 등장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며,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김진표는 회고록을 쓰는 과정에서 나름 윤석열을 위해 필터링해 줬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내용들 모두가 그저 전언에 그치는 만큼 증거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진표는 정치적인 도의 차원에서 회고록을 통해 이를 알렸음을 밝혔다. 실제로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직접적인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됐다. 하지만 윤석열은 희생자 159명의 유가족이 아닌 이상민이라는 개인의 억울함이 더 크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는 자연스럽게 특검법 발의와 함께 이슈가 되고 있는 채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 외압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임성근 사단장 한명의 억울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채상병의 죽음에 대한 수사를 외압 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느껴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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