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은 한때 한국판 일론 머스크라 불리며, 향후 대한민국의 블록체인 업계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손꼽혔다. 하지만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불과 몇년이 안걸렸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피해자를 낳았던 테라코인과 루나코인이 사실상 폰지사기였음이 드러났다. 현재 권도형은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도주하던 중에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돼서 송환을 두고 재판을 벌이고 있다.
권도형(1991년)은 대원외고를 졸업했으며, 스탠포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과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이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각각 3개월씩 엔지니어로 인턴생활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2018년 티몬의 창업자인 신현성 대표와 함께 테라폼랩스 창업을 했다. 테라폼랩스는 암호화폐 테라USD(UST)와 루나(LUNC)를 발행했는데, 이더리움에 이어 2번째로 큰 디파이 플랫폼으로 떠올랐을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에 2019년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에 손꼽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테라코인과 루나코인을 개발한 권도형은 어떤 식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었을까? 여기서부터는 전문용어들이 나오가 때문에 다소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 보자. 의외로 쉽게 이해된다.
① 테라코인과 루나코인 대폭락 사태 총정리
권도형은 테라코인을 사면 연이율 19.4%의 이자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당시 2~3%에 불과한 예금금리와 비교하면 무려 약 10배나 더 많은 이자를 주겠다는 얘기인 만큼 엄청난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단순히 이자를 많이 주겠다고 하면, 아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테라코인은 코인 생태계에서 미국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되겠다는 비전을 어필했다.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파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된다.
디파이(Defi)는 탈중앙화된 금융을 말하는데, 소위 제도권이라 불리는 정부나 금융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테라코인이 비록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거래 간에 사용되는 화폐로 등극시켜 디지털 세계에서 기축통화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테라코인이 기축통화가 되면 디지털 세계에선 사실상 법정화폐가 되므로, 다른 코인을 살 때 많은 투자자들이 테라코인을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매번 현금으로 교환할 때마다 발생하는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런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테라코인에 대한 강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서 테라코인은 미국달러와 가치를 1:1로 연동해서 고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고로 가치를 강제로 고정시키는 것을 페깅(pegging)이라고 하며, 테라코인은 가치가 고정된 코인이기 때문에 스테이블 코인이라 부른다. 보통 테더(Tether)코인과 같이 유명한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라는 현물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테라코인은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를 달러와 동일하게 페깅시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게 양날의 검이 됐다.
알고리즘의 원리는 복잡하지만, 핵심 아이디어 자체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수요공급이다. 만약 테라코인이 $1보다 비싸지면, 테라코인의 공급량을 늘린다. 테라코인의 유통물량이 이전보다 많아지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1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반대로 테라코인이 $1보다 싸지만, 테라코인의 공급량을 줄인다. 테라코인의 유통물량이 이전보다 줄어들면, 가치가 향상되기 때문에 다시 $1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수요공급을 맞추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루나코인이다. 즉, 테라코인은 달러와 1:1로 페깅하는 과정에서 루나코인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테라코인의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루나코인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테라코인의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테라코인을 팔고 받은 돈을 루나코인으로 지급한 것이다. 딱 이 정도만 이해하면 된다. 표면적으로 테라코인과 루나코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디파이를 이뤄낸 것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아예 대놓고 권도형의 테라코인과 루나코인을 폰지사기라고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여러 석학들 역시 달러를 현물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은 테라코인은 절대 스테이블 코인이 될 수 없다고 경고를 했다.
다마, 테라코인과 달리 루나코인은 스테이블 코인이 아니기 때문에 코인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에는 이 같은 알고리즘이 상당히 견고하게 작동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무려 20%에 가까운 이자를 주기 때문에 굳이 팔아야 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코인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함과 동시에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아 테라코인의 가치가 $1로 페깅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자, 뱅크런 사태가 일어나면서 대번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지난 2022년 5월, 테라코인과 루나코인은 무려 99.98%라는 대폭락을 기록했다. 한때 $120까지 거래되던 루나코인이 불과 10여일 만에 무려 $0.00018까지 떨어졌으니, 대충 15만원짜리가 1원이 된 셈이었다. 시가총액으로 접근하면 훨씬 더 어마어마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얼핏 계산해도 52조원이 넘는 코인이 먼지처럼 사라진 셈이니, 2024년 9월 기준 시가총액 상위 5위(53.3조원)인 현대차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세계 최대 코인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물론 국내거래소 업비트, 빗썸 등에서도 해당 코인의 상장폐지에 나섰으니, 날벼락을 맞은 국내투자자들의 수만 해도 무려 28만명으로 추정됐다. 아예 상장폐지가 된 만큼 실낱 같이 남아있던 잔존가치마저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권도형은 코인들이 상장폐지의 위기에 처했을 당시 테라 생태계를 부활시키기 위한 계획을 내놨지만, 공염불에 불과했다.
②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 1호 수사
이후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루나코인 대폭락 사건을 1호 수사로 내세웠다. 사실 합수단은 원래 여의도의 저승사자라 불리던 검찰 내 전문수사기관이었지만,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검찰개혁을 한다는 명분 하에 없앴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년여 만인 2022년 5월에 다시 부활시켰다. 사실 전문수사기관을 없앤 것 자체가 굉장히 무리한 결정이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 당시 벌어졌던 라임, 옵티머스 사건을 덮기 위해 폐지시켰다는 의혹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합수단은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설치됐으며, 단성한 검사를 단장으로 임명하고, 금융수사에 강한 검사들과 함께 금융위, 금감원 등과 같은 유관기관의 전문인력들이 합류했다. 단성한은 루나코인 대폭락 사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중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코인 매수 시 20%에 가까운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것 자체가 정황상 폰지사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했는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리고 권도형이 애초에 테라 프로젝트 자체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참고로 테라 프로젝트는 테라코인을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이를 전자상거래 업체들에게 지급결재 서비스로 제공해 수수료를 거두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이걸 사기라고 봤던 것이다. 2023년 4월, 신현성을 포함한 테라폼랩스 창립멤버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③ 몬테네그로 송환 결정
주범이라 할 수 있는 권도형은 싱가폴을 거쳐 도주에 나섰기에, 무려 한국과 미국, 싱가폴 수사당국으로부터 수배를 당했다. 그리고 동유럽 국가인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몬테네그로 총리인 밀로코 스파이치가 테라폼랩스의 초기 투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권도형의 송환과 관련해서는 1심에서는 미국 송환, 2심에서는 한국 송환, 3심에서는 한국 송환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그리고 법무부장관이 판단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권도형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구속된 마당에 한국 송환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법원이 금융범죄에 관해서 만큼은 100년형이 넘는 징벌적인 형벌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권도형은 루나코인 대폭락이 펼쳐지기 전에 국내 최고의 로펌인 김앤장에 무려 90억원에 달하는 돈을 송금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철저하게 마쳐둔 상태다.
참고로 루나코인 대폭락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합수단은 정규직제화되는 데 실패하며, 결국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합동수사부와 금융범죄수사과를 신설하는 것에 그쳤다. 이는 행정부의 군살빼기 일환으로 더 이상 정부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어쩌면 이때부터 수면 아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간에 갈등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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