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에 있었던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는 여러 가지 정치적 함의가 있었다. 일단 문재인 정권 중반부에 실시됐던 만큼 중간선거와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미래통합당이 여전히 극우세력인 친박계, 태극기부대 등과 결별하지 못하면서 역대급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총선의 최종결과와 향후 정국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자.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 최종결과
·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 163+17=180석
·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 : 84+19=103석
· 정의당 : 6석 (심상정, 류호정, 장혜영, 강은미, 배진교, 이은주)
· 국민의당 : 3석(최연숙, 이태규, 권은희)
· 열린민주당 : 3석(김진애, 최강욱, 강민정)
· 무소속 : 5석 (권성동, 김태호, 윤상현, 이용호, 홍준표)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결과 총정리
① 코로나 정국 하에 치러진 선거
21대 총선은 코로나 확산이라는 초유의 정국에서 치러진 선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발 코로나는 2020년 음력설을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으며, 선거는 같은 해 4월에 치러졌다. 외부 위기 앞에서는 똘똘 뭉치는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권여당에게 유리한 국면이 펼쳐졌다. 참고로 이러한 민족성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 초기 방역을 상당히 잘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실제로 코로나가 치명적으로 날뛰던 상황에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렀던 한국은 전 세계에서 주목했으며, 별다른 문제없이 선거를 마친 것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이는 방역당국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업적이었다. 따라서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게 몰표가 쏟아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② 보수의 전격적인 개혁
이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까지 합쳐 총 183석이라는 초거대 여당이 됐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합쳐서 겨우 103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역대 최악의 선거패배를 당한 셈이었다. 심지어 보수진영 내 잠룡이라 할 수 있는 황교안 당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의원 등 마저 대거 낙마했다. 그나마도 개헌지지선인 100석을 지킨 것은 다행 중에 다행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은 줬다고도 볼 수 있다.
보수진영 내 중진들 중에서는 당을 수습할만한 사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아예 새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준석에게 맡겼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꿨으며, 이준석은 헌정사상 최초로 30대 보수정당 당대표가 됐다. 당시의 이준석이 대단했던 점은 보수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선점하는 동시에 뭘 해도 꼰대처럼 보였던 미래통합당을 합리적인 보수로 이미지 메이킹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정의라는 정치적 자산을 가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 마저 영입되자 국민의힘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됐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이준석이 당대표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치렀던 총 3번의 전국단위 선거(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③ 진보의 철저한 세대교체
진보진영은 21대 총선을 통해 상당한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동교동계가 주축이 된 민생당(=민주평화당)은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마저 얻어내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대신 급진적인 성향의 젊은 세대가 많이 들어왔다. 훗날 이들은 초금회(친문계)와 처럼회(친명계)의 주축이 된다.
지난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가 됐던 이재명은 당시 총선 때만 해도 이미 대선주자급으로 발돋움했었다. 그래서 공천을 이끌었던 친낙계와 친명계 간에 공천잡음이 상당했지만, 상대적으로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다. 그만큼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낙연 전총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반면 보수진영은 의외로 많은 새누리당 올드보이들이 미래통합당 혹은 무소속으로 다시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는 당시 보수진영 내에 다가올 2022년 대선을 주도할 수 있는 확실한 대선주자가 없었던 탓이 컸다. 그 바람에 젊은 보수들이 굉장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세대교체는 물론 표심잡기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총선 패배를 계기로 보수진영은 이준석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전면에 내세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시작한다.
④ 실패로 끝난 중도정당
2016년 20대 총선과 2017년 19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유승민의 바른정당은 존재감을 잃게 된다. 그나마 국민의당은 비례대표를 통해 3명의 의원을 배출해 내는 데 성공하지만, 지역구 후보는 단 한명도 내지 못하면서 반쪽짜리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안철수 스스로가 극중주의를 외쳤던 만큼 중도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고자 했던 정치적 실험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었다.
유승민의 바른정당은 상황이 더 안좋았다. 다수의 유승민계 의원들이 보수 빅텐트를 쳤던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공천을 받는 데 까지는 성공하지만, 줄줄이 낙선하고 말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개혁보수, 중도우파 등으로 불렸던 유승민계가 무너지자 양당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화제가 됐던 21대 총선 지역구 최종결과
이낙연은 황교안을 누르고 당선됐으며, 이후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이어갔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했던 전직 대통령이 무려 3명(윤보선, 노무현, 이명박)이나 된다는 점에서 이낙연에게 거는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재명에게 밀려 2022년 20대 대선에 나서지 못하게 된다. 황교안은 낙선 이후 당대표를 사퇴했다. 본인이 종로에서 얻은 저조한 득표율과 함께 당의 선거참패에 책임지는 모양새였다. 이는 이후 이재명이 20대 대선과 8회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것과 대조됐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주민 의원이 은평(갑)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재기발랄한 정청래 전의원은 마포(을)에서, 6월 민주화 항쟁의 상징이자 철새 정치인 이미지를 가진 김민석 전의원이 영등포(을)에서 성공적인 복귀를 했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표싸움이 펼쳐졌던 광진(을)은 결국 고민정 청와대 전 대변인이 박빙의 차이로 오세훈을 눌렀다. 다만, 오세훈은 이후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도 연이어 승리하면서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동작(을)은 이수진 전판사가 나경원을 이기고 당선됐다. 참고로 이언주 의원은 부산 남구(을)에서 낙선했다. 전직 북한의 외교관이었던 태영호는 강남(갑)에서 승리했다. 아무리 보수진영 후보이고 출마했던 지역구가 보수진영의 텃밭인 강남이라고는 하지만, 탈북민이 과연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다. 현재 그의 주민등록상 이름은 태구민으로 북한 주민(民)들을 구한다(救)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당시 선거에서 가장 놀라웠던 결과는 배현진의 송파(을) 당선이었다. 엄청나게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결국 이렇게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들 문제로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제원 의원은 생환에 성공했지만, 반대로 진보진영 잠룡 중 하나로 손꼽히던 김부겸 전의원은 떨어졌다. 이후 장제원은 친윤계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정말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홍준표와 김태호 전지사 모두 공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당선에 성공한다. 역시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윤상현 전의원은 인천시 동구미추홀(을)에서 실질적인 경쟁자인 미래통합당의 안상수 전시장을 꺾고 당선된다. 표 차이가 불과 171표였으며, 이후 홍준표, 김태호 등과 함께 국민의힘으로 복당한다. 심상정 의원은 당시 선거를 통해 4선의원이 됐다. 정의당은 당시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전략을 완전히 잘못 짰던 통에 오로지 심상정만을 당선시켰다. 김은혜 청와대 전 대변인은 김병관 전의원을 박빙의 차이로 승리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천정배, 박지원, 정동원 등과 같은 진보진영 올드보이들이 대거 낙선했다. 그 자리는 친문계와 친명계 초선의원들로 채워졌다. 참고로 이 중에서 박지원은 추후 국정원장에 임명된다. 태극기부대를 등에 업었던 김진태 의원은 패배했으며, 좌희정 우광재의 이광재 전지사는 국회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후 치러진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두 사람의 희비는 엇갈린다. 김진태는 강원지사가 됐지만, 지역구를 포기했던 이광재는 낙선하고 말았다.
강원랜드 취업비리에 연루됐던 권성동 의원이 2심에서 무죄판정을 받고 무소속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으며, 이후 친윤계의 핵심으로 활동한다. 세월호 관련 막말논란의 주인공인 차명진 전의원은 생각보다 높은 득표율(32.5%)을 기록했지만, 결국 낙선하고 만다. 이후 극우로 분류되면서 아예 국민의힘에서 배제되자,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전의원과 함께 움직였다.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한 강용석을 도왔지만, 완패를 당했다. 이제는 정치생명이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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