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전 2016년 20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양당제의 폐해에 치를 떠는 중도층의 민심을 반영한 제3지대 신당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권자들은 제3지대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으면서 중도 플랫폼은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제3지대 빅텐트의 성공조건에 관해 알아보자.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다양한 이합집산을 벌인다. 보통 계파 싸움과 공천 파동을 겪으며 갈등이 표면화되는데, 이는 탈당과 분당, 신당창당 등으로 이어진다. 다만, 지난 22대 총선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양당의 대립으로 인해 제3지대 신당에 대한 수요가 특히나 높았다. 실제로 양당에서 ㉮ 운동권 청산, ㉯ 정권심판론, ㉰ 김건희 리스크 등을 화두로 던졌지만, 생각보다는 화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정권심판론이 작동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상상 이상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난 수년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양당은 민생을 제쳐둔 채 상대방의 진영을 공격하기 급급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실용적인 성향의 중도층마저 소리 높여 신당 창당을 요구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에 양당에서 개혁적인 포지션을 차지하며, 중도적인 성향을 보이던 비주류들이 움직임에 나섰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찾아온 셈이었다.
그래서 나온 대표적인 신당들로는 조국의 조국혁신당, 이준석의 개혁신당, 이낙연의 새로운미래, 금태섭의 새로운선택, 원칙과상식의 미래대연합, 양향자의 한국의미래 등이 있었다. 하지만 각자가 따로 움직이는 바람에 폭발력이 떨어졌기에 빅텐트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워낙 이질적인 성향을 가진 각기 다른 집단이었던 만큼 협상에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2024년 2월 음력설을 맞아 이미 한국의희망과 합당을 마친 ㉮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 새로운미래, ㉰ 새로운선택, ㉱ 미래대연합이 합당에 합의했다.
아래는 제3지대 통합신당 합당과 관련된 합의문이다. 세부적인 내용이 협의되진 않았지만, 주요한 골자들은 합의를 마무리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결정됐으며, 당대표는 이준석 전대표와 이낙연 전총리가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다. 최고위원은 총 4명이며, 4개의 연합체에서 각각 한명씩 추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즉, 총 6명으로 지도부인 최고위원회가 구성되는 셈이었다.
제3지대 통합신당 합당 합의문
1.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한다.
2. 지도부 명칭은 최고위원회로 한다.
- 공동대표 : 이낙연, 이준석
- 최고위원 :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 원칙과상식 1인 추천
3.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낙연 당대표가 맡는다.
4. 연휴 이후 조속한 시일 내에 통합합당대회를 개최한다.
결과적으로 최고위원회가 개혁신당 2명, 새로운미래 2명, 새로운선택 1명, 원칙과상식 1명으로 구성되는데, 짝수라는 점이 뭔가 이상했다. 만약 표결을 했는데, 3:3이 나오는 경우에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확인해 보니, 이 경우에는 이준석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이준석이 신당의 주도권을 끌고 간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낙연이 맡기로 했다. 총괄선대위원장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초미의 관심이 될 거라 예상되는 비례대표 순번에 대한 결정권한이 있다면, 엄청난 실리를 챙긴 셈이다. 통합 후 개혁신당의 예상 지지율이 대략 10%였던 만큼, 이 정도면 6명 전후의 비례대표 후보가 당선권에 포함됐다. 개인적으로는 비례대표 순번 역시 최고위원 구성과 동일하게 각 연합체에서 1명씩 돌아가며 차지하지 않을까 싶었다.
제3지대 빅텐트 3가지 성공조건
① 주도권
결론부터 말해 명분은 이준석이 가져가고, 실리는 이낙연이 챙겨가는 양상이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통합신당의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결정됐다. 후문에 따르면, 합의에 다다르기 가장 어려웠던 이슈가 당명이었다고 한다. 간판에 불과한 당명에 왜 이리 집착했을까 싶지만, 정치가 명분 싸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번에 이해된다. 당명이 통합신당으로 결정된 만큼 누가 봐도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이낙연의 새로운미래를 흡수하는 모양새가 됐다.
사실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대선주자들 간에는 주도권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합의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낙연이 통 크게 많이 양보한 듯싶다. 확실히 인간은 상생의 기회 앞에서 협력하는 게 아니라 공멸의 위기 앞에서 단합하는 것 같다. 실제로 제3지대의 이슈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묻혀가는 형국이었다. 물론 이준석이 주장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라든가, 류호정 전의원이 꺼내든 여성징병제 등과 같은 의제가 나름 화제가 됐지만, 당장에는 여론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②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캡 46석 적용
22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결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됐다. 다만, 비례대표 총원이 기존 47석에서 46석으로 줄어들었다. 지역구 선거에서 이기기 힘든 까닭에 비례대표 선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군소정당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 의석수는 총 300석이다. 이중 지역구 의원은 254석이고, 비례대표 의원은 46석이다. 연동형 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정당 득표율은 높은데, 지역구에 당선된 의원의 수가 많지 않은 경우를 대비해 도입됐다.
예를 들어 정당 득표율이 10%인데, 지역구에 당선된 의원의 수가 2명인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300명×10%=30석이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28석(=30석-2명)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채워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50%만 적용돼서 14석(=28석×50%)을 비례대표 의원으로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캡(=cap=상한제)이 30석으로 제한됐던 지난 21대 총선과 달리 이번 22대 총선에서는 46석 전석에 적용된다.
참고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혜택을 받는 최소조건은 3% 이상의 정당 득표율이다. 애초에 비례대표제 자체가 다양한 군소정당들의 국회 진입을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선거법이다. 하지만 거대양당이 이번에도 위성 비례정당을 냈기 때문에 개혁신당의 입장에서는 큰 호재라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지난 21대 총선에서 양당의 비례위성정당들이 총 47석 중에서 36석을 차지했으며, 22대 총선에서도 총 46석 중 32석이나 가져갔다.
③ 화학적 결합
제3지대 군소정당들이 물리적으로 합당했다고는 하지만, 화학적인 결합이 정말로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너무나도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뭉쳤다. 막말로 총선 전만 해도 이준석과 이낙연, 여기에 류호정이 함께 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확실히 그간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서로 협력했다기보다는 대립을 했다. 따라서 통합보다는 분열이 더 쉬워 보인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불과 몇년 전에 바른미래당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개혁보수의 상징인 유승민이 이끄는 바른정당이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런칭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산산조각 났다. 이러니 군소정당들 사이에서는 자강론이 드셌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선거에서 어떻게든 생존해야 된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합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개혁보수, 온건진보라는 중텐트 2개가 유지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제3지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빅텐트가 완성됐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에 새로운미래가 분당을 선택하고 말았다. 전장연의 선봉장인 배복주의 우회입당 이슈와 함께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는 와중에서 이견을 조율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예상됐던 분당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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