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에서 쫓겨났던 과정을 살펴보면, 평론가들 사이에서 한창 떠돌았던 김옥균 프로젝트가 뭔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타임라임 순으로 알아보고, 당대표 권한을 누가 맡았는지 점검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싶다. 당권 경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사례가 될 것 같다.
여로모로 장희빈 주도로 펼쳐졌던 궁중암투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결은 질투나 치기가 아닌 서인(인현왕후)과 남인(장희빈) 간의 파워게임이었다. 이준석이 퇴출되는 과정 역시 친이준석계(=친유승민계)와 친윤계 간에 벌인 국민의힘 당권경쟁이었다고 보면 된다. 결과는 널리 알려진 대로 친윤계의 압승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의 케미는 애시당초 매우 안좋았다. 그래서 2021년 7월 굳이 이준석이 부재중일 때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등 첫만남부터 구설수가 많았던 것이다. 이는 윤석열이 당시만 해도 신당 창당에 관심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준석이 국민의힘 경선버스는 반드시 정시출발할 거라 압박하는 바람에 생겼던 앙금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대선기간 중에도 갈등이 있었지만, 윤석열이 이준석을 대승적으로 안고 가는 모양새를 취하며, 결국 2022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된다.
윤석열의 입장에서는 막상 어렵게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국민의힘 의석수가 겨우 103석에 불과했던 탓에 원하는 대로 국정운영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다가올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조건 150석을 넘기는 압승을 거둬야만 됐다. 거기다 본인 스스로가 원래는 진보진영의 픽을 받아 성장했던 사람인지라 국민의힘 당내에 어떠한 지분도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만을 따르는 친윤계를 만들고자 하는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초창기 공신인 몇몇 윤핵관들을 중심으로 친윤계가 형성되긴 했지만, 사실 찐윤이라 불릴만한 검사 출신 인맥들이 많이 없었다. 따라서 본인 최측근을 22대 총선의 공천권을 휘두를 수 있는 당대표로 심어야만 했다. 정권 초만 해도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이준석과 파열음이 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봤다. 이는 합법적으로 그를 몰아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다.
심지어 이준석은 ㉮ 2021년 재보궐선거, ㉯ 20대 대통령 선거, ㉰ 8회 지방선거 등 무려 3번의 전국단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당대표였다. 이전까지 보수가 연패를 거듭했던 때를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면서 까지 쫓아내면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게 예상됐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이를 실행하고 말았다.
이준석 당대표 퇴출과정 타임라인
① 윤리위 1차 징계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바로 윤리위원회 징계였다. 이전에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대표가 이준석에게 성접대 의혹, 증거인멸 교사의혹 등이 있다며, 이를 제보한 적이 있었다. 해당 의혹은 그저 루머에 불과했기 때문에 2021년 12월 윤리위에서는 징계심의를 하지 않겠다고 이미 결정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준석을 당대표에서 몰아내야 됐던 윤핵관은 해당 의혹을 이준석 리스크로 과대포장했다.
그리고 2024년 7월,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이준석에게 6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이준석은 윤리위 처분을 당대표 권한으로 보류시킨 채, 당대표를 사퇴하지 않았다. 이는 당헌당규에 따라 당대표가 윤리위 결정을 집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판단이었다. 즉, 당헌당규가 만들어졌을 당시만 해도, 당대표가 징계받는 상황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하면서, 사실상 당대표에서 쫓겨난 꼴이 됐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징계 종류
참고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징계는 4가지(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권유, 제명) 종류가 있다. 가장 가벼운 징계는 경고다. 경징계인 만큼 조심하라는 의미 정도로 볼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당원권 정지로 1개월부터 최대 3년까지 가능하다. 당원권이 정지된 기간 동안은 당직수행이 불가능하다. 다만, 당직에서 해임되는 것이 아닌 만큼 해당 징계가 끝나면, 본인이 맡았던 당직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
탈당권유와 제명은 사실상 동일하지만, 의외로 큰 차이가 있다. 탈당권유는 10일 이내에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별도의 의결없이 제명 처리된다. 따라서 당사자에게 스스로 명예퇴진할 수 있는 기회를 준거라고 보면 된다. 반면 제명은 최악의 불명예 퇴진인 만큼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된다. 절차 자체가 복잡한 만큼 심각한 잘못이 있지 않은 이상 잘 내려지지 않는다.
해당 사건이 벌어지고, 며칠 뒤 윤석열과 권성동 간에 체리따봉 문자가 오갔다. 그렇잖아도 무리한 징계 때문에 여론이 악화됐는데, 대통령이 당무개입을 아예 대놓고 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수습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윤핵관 내에서도 당권경쟁이 펼쳐졌던 만큼 권성동이 당대표 직무대행을 계속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만다.
② 비대위 체제 vs 법원 가처분 인용
그래서 2024년 8월, 주호영 비대위 체제로 넘어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비대위로의 전환에 있었다. 비대위는 아무 때나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비상상황에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윤핵관 측에서는 최고위원 중 과반이 사퇴하면 위기상황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당헌당규에 이런 구체적인 조항이 없었다. 이준석은 이틈을 노려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에서는 일부인용을 결정 내리면서 이준석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이준석은 당대표직을 계속 유지했고, 주호영 비대위는 출범 자체가 인정이 안돼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그래서 친윤계는 2가지 방법을 내놓게 된다. ⓐ 추가적인 비대위를 설립하기 전에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할 경우 위기상황임을 못박는 것과 ⓑ 이준석에게 남아있는 잔여 임기(10개월) 보다 긴 징계를 내리는 것이었다.
일단 전국위를 개최해 당헌당규를 고쳤으며, 이후 2022년 9월 정진석 비대위 체제를 추진했다. 그리고 권성동 대신에 주호영에게 원내대표를 맡겼다. 이를 계기로 권성동은 사실상 윤핵관에서 낙마했으며, 친윤계와도 거리를 두게 된다. 이런 정치 격변 속에서 이준석이 들고 나왔던 사자성어가 바로 양두구육이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자신이 윤석열에게 속았음을 비유한 것이다.
윤핵관들은 이준석에게 당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라는 선당후사(先黨後私)를 외쳤지만, 이준석은 애초에 선당후사라는 단어 자체가 근본 없는 단어라며,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보다 우선돼야 된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정치권 입맛에 맞춰 바꾼 것 아니냐며 역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안이 생길 때마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그 어떤 것도 인용되지 않은 채 모두 기각되고 말았다.
③ 윤리위 2차 징계
이후 2023년 10월, 이양희는 이준석에게 당론을 불복했다는 이유 등으로 1년 당원권 정지라는 추가처분을 내렸다. 따라서 당원권이 총 1년 6개월 동안 정지되게 됐다. 원래 이준석의 당대표 임기는 2023년 6월까지였다. 그래서 처음 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만 해도 2023년 2월에 복귀해 남은 4개월 동안 당대표직을 수행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1년을 더 받는 바람에 더 이상 당대표를 붙들고 있는 게 의미 없어졌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3~4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이렇게나 어렵게 이준석을 퇴출시켰지만, 윤석열 정권은 도리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 과정들을 보면 알겠지만, 너무도 많은 무리수를 둔 탓에 민심의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에 정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20~30%까지 추락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정치가 참으로 덧없게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2022년 9월 경찰에서는 이준석의 해당 혐의들에 관해 공소권 없음과 무혐의 결론을 냈다. 심지어 2023년 11월,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는 이준석에게 내렸던 두차례 징계 모두를 취소하며, 무리한 징계였음을 스스로 자인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와 관련된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이 1도 없게 됐다. 실제로 22대 총선 때 개혁신당을 창당해 화성시(을) 지역구에 출마했을 때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에 맞서 박빙의 선거를 펼쳤음에도 해당 이슈는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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