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3차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김기현 의원은 당대표 선거에 친윤계 주자로 출마했다. 아무리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중진이라고는 하지만, 인지도가 워낙 떨어지는 까닭에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의 당무개입 등과 같은 무리수가 많이 오갔다. 김기현의 프로필과 문재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김장연대, 꽃다발 사건 등을 알아보자.
솔직히 당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살펴보면, 이상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애초에 당대표 깜냥이 아닌 후보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다 보니, 비상식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후보들 간의 합종연횡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실상 찍어 누르는 수순을 밟았다. 보수가 가지고 있는 핵심가치는 자유다. 그런데 자유로운 경쟁이 아닌 추대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은 절대 보수답다고 할 수 없었다.
윤핵관들은 대통령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인물이 당대표가 돼야 된다고 주장했다. 아니 언제부터 여당의 당대표가 대통령의 부하가 됐단 말인가? 물론 여당의 당대표가 대통령과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비슷한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기에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대통령의 명령을 따라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 있다 보니, 언제든 폭주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반드시 존재해야 된다. 만약 대통령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득달같이 나서서 막아야 된다. 그랬기 때문에 비선실세 최순실이 득세했던 박근혜 정권도 무너질 수 있었던 것이다.
김기현 프로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김기현(1959년)은 서울대 법학과, 동대학 법학 석사를 마쳤으며, 판사로 활동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시 남구(을) 지역구에 공천받아 당선됐다. 일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해당 지역에서 3선의원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는 유하면서도 높은 친화력으로 계파를 넘어선 믿음을 얻어왔다.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 중 하나였지만, 친박계가 당의 전면에 나섰을 때도 당의 요직을 맡았을 정도로 중용됐다.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 선거에 차출돼서 승리를 이끌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권주자로서의 포부가 생겼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가 가지고 있는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일머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협상력과 네트워킹을 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구설구가 거의 없다. 다만, 유하고 원만한 성격 때문에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맹렬한 팬층이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2016년 바른정당 분당사태 당시 함께 탈당할 거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당내 잔류를 선택했다. 2018년 7회 지방선거에 연이어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만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에게 김기현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김기현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패배했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송철호와 황운하 모두 징역 3년을 받았으며,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다음 지방선거까지 워낙 오랜 기간이 남은 관계로 2020년 21대 총선을 통해 다시 국회에 진입했다. 그리고 2021년 4월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당선된다. 이준석 당대표와의 호흡이 꽤나 잘맞았지만, 친윤계와도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2023년 전당대회에 뛰어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기현은 윤석열 정권과 안정적인 호흡을 맞출 것으로 기대됐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겨루기에는 인지도와 체급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윤심을 등에 업었음에도 선거 중반에서야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대놓고 친윤계가 뒤를 봐주고 있음에도 지지율 향상이 더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김건희 리스크 등으로 인해 윤석열 정권 자체가 국민적인 비호감이 클 뿐만 아니라 당원들도 아직은 김기현을 당대표 깜으로 여기지 않았던 탓이 컸다.
국민의힘 당대표는 차기 대권주자의 상징이자 보수의 리더다. 그만큼 카리스마가 있어야 되는데, 김기현은 역대급으로 유약해 보였다. 솔직히 친윤계가 김기현을 당대표로 추대했던 이유도 그를 바지사장으로 두고, 다가올 22대 총선에서 공천을 좌지우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윤석열 정권은 야당이 워낙 많은 좌석수를 가지고 있던 탓에 어떠한 정책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가올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절박하게 전당대회에 개입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여론만 봤을 때는 국민의힘 후보로 총선 수도권 선거에 나간다면, 낙선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정도로 민심이 흉흉했다. 그럼에도 일단은 당권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장제원 의원은 아예 김장연대를 외쳤던 것이다.
대통령 당무개입 의혹 3종 세트
① 전당대회 룰 개정
이준석 퇴출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대위 체제로 운영됐다. 그리고 2023년 전당대회에 앞서 룰을 당원 100%로 변경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막장의 분위기가 슬며시 흘러나왔다고 보면 된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비윤계의 리더 유승민 전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당연히 친윤계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떻게든 유승민을 주저앉히기 위해 서둘러 당헌당규를 개정했다고 봐야 된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역선택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궁색해 보인다. 당원들 대부분이 정치 고관여층인 반면, 생업에 바쁜 일반 국민들은 정당에 소속될 생각 자체를 안한다. 따라서 당원들의 의견만으로 보수 전체를 대표하는 당대표를 뽑겠다는 것 자체가 웩더독(weg the dog)의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중도로의 확장을 포기한 셈이었다. 실제로 국민의힘 당원은 약 100만명 밖에 안되는데, 이들의 의중만으로 보수진영의 리더가 뽑히게 됐다.
② 초선의원 연판장
그렇게 당원들에게 인기가 없는 유승민을 재끼고 나니, 당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경원 전의원이 지지율 1위로 뛰어올랐다. 실제로 나경원은 박근혜 탄핵 당시 비박계가 대거 바른정당으로 옮겨갈 때, 친박계만 남아 있는 자유한국당에서 원내대표를 맡아 무너져가는 당을 지켰으며, 지난 2019년 선거법 개정안 및 공수처 설치법 패스트트랙 파동을 거침없이 막는 모습을 보여 극우세력 사이에서는 아이돌로 성장했다. 당원들에게는 그 추억이 남아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나경원을 선호한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지도에 비해 경쟁력 자체가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아무리 보수가 밀리던 상황이었다곤 하지만, 자신의 지역구인 동작(을)에서 정치신인 이수진에게 패배한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상당히 의외였다.
어쨌든 친윤계는 그런 나경원을 어떻게든 포기하게 만들어야 됐다. 그래서 초선의원 48명을 내세워 연판장을 만드는 등 공개저격에 나섰다. 물론 그냥 무릎 꿇을 나경원이 아니었다. 제2의 진박감별사가 득세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며, 바른정당 분당이 이뤄졌던 당시가 떠오른다는 자신의 심정을 SNS에 토로했다. 보수가 역대급 최악의 시기를 보내던 시기를 굳이 들춰내, 새누리당이 어떤 식으로 무너졌는지 상기시키는 등 여론전에 나섰던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에서는 진짜 친박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한 색출에 들어갔고, 많은 의원들이 자기가 진박임을 선언하는 해프닝도 펼쳐졌다. 그 결과 압승이 예상됐던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게 1석 차이로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권력에 취해있던 친윤계는 애초에 여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경원도 경선을 포기하고 말았다.
정치인은 명분과 실리를 양분 삼아 성장한다. 사실 중진으로서 압도적인 인지도를 갖춘 나경원 정도면 굳이 성장을 고민할까 싶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정치인의 다음 목표는 더 큰 공직이다. 참고로 나경원은 서울시장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친윤계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시련은 오히려 기회였다. 하지만 그녀는 권력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③ 이진복 정무수석
유승민에 이어 나경원마저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비윤계 후보단일화를 촉진시켰으며,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는 떨어졌다. 이에 안철수 의원이 치고 나갔다. 나경원의 지분은 김기현과 안철수에게 분산됐지만, 유승민의 지분은 대부분 안철수에게 쏠렸다. 물론 유승민, 안철수 간에 특별한 연대가 있었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도보수가 움직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러자 김기현은 조급함을 느꼈는지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유명인인 남진, 김연경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들이 지지를 표명했다고 홍보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진과 김연경은 김기현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었을 당시에 처음 만난 사이였다고 한다. 거기에 김기현이 들고 있던 꽃다발마저 본인이 스스로 준비해서 왔다고 하니, 이를 지켜보던 당원들 입장에서는 쪽팔리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안철수를 철새 정치인이라고 저격한 점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어찌 됐던 마지막 순간에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에 이뤄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문득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토사구팽이 절로 떠오른다. 이렇게 김기현이 실수할 때마다 안랩의 주가는 폭등했으며, 일각에서는 당대표 당선 가능성을 매우 높게 전망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에서도 마음이 급해졌는지, 이진복 정무수석을 안철수에게 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쏟아냈다. 마침 안철수가 당대표가 되면, 국민의힘은 친윤계를 중심으로 분당될 것이라는 루머도 나돌았다. 물론 분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위원을 줄사퇴시켜 다시 한번 비대위를 운영할 가능성도 높다. 그만큼 윤석열과 안철수 간에는 케미가 안좋았다. 케미 자체만 보면 의외로 시원시원한 천하람 위원장이 더 좋아 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기현이 본경선에서 바로 승리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원만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은 강성지지자들이 결과를 좌지우지함을 의미한다. 안철수의 지지세력은 중도보수 세력이 많은데, 이들은 대체로 정치 저관여층이다. 따라서 확장력은 우위에 있었지만, 결집력이 떨어졌다. 일반적인 당대표 선거의 투표율이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철수의 필패는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렵게 김기현은 당대표가 됐지만, 같은 해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함에 따라 물러나게 됐다. 불과 1년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공천을 못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결국 5선의원이 되는 데 성공한다. 다음 총선을 통해 국회의장을 노리거나 국회부의장 정도를 맡은 뒤에 정계은퇴를 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다시 한번 울산시장에 도전한 뒤 계속 연임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