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 의원이다. 지금이야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사실 그는 보수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자체를 진보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물론 진보진영에 머무는 와중에도 그가 보인 신념은 중도에 가깝긴 했다. 안철수의 프로필, 지역구, 단일화 역사를 연대순으로 알아보자.
정체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안철수는 보수 쪽으로 중도 확장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반대로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유승민 전의원은 진보 쪽으로 중도 확장성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의도치 않게 탈당과 창당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안철수는 합당을 포함해 총 6번의 창당을 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런 인물이 또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안철수 단일화 역사, 정치역경 총정리
① 첫번째 단일화 :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과 관련해 주민투표를 제안했지만, 투표율이 미달됨에 따라 시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그리고 공석인 서울시장을 채우기 위한 재보궐선거가 같은 해 10월에 펼쳐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나경원 의원이, 민주당은 한명숙 전총리가 출마를 준비했다. 하지만 안철수와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특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던 안철수는 끝까지 완주만 하면 당선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야당후보 단일화에 공감해서 그런지, 박원순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과감했던 첫번째 양보는 안철수가 대중에게 대인배로 인식되기에 충분했으며, 단번에 차기 대통령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후 한명숙 역시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무명의 변호사였던 박원순은 기적적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② 두번째 단일화 :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새정치를 외치던 안철수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엄청났다. 실제로 그는 유력 대권주자였으며,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워낙 강력했기에 야권단일화가 이슈로 떠올랐고, 선거 직전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한다.
단, 이때의 단일화는 이전에 비해 순조롭지 않았다. 단일화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지원 없이 해외로 곧장 출국했기 때문이다. 결국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안철수가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면, 이때 어떤 식으로든 야당의 단일화 후보가 됐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애초부터 무소속으로 시작할 게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경선에 뛰어드는 것도 방법이었다.
실제로 많은 선거 전문가들이 좌파색이 짙은 문재인 보다는 중도로서 실용적인 성향이 강한 안철수가 표결집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을 했다. 결과론적인 얘기라 별 의미가 없긴 한데, 이때가 아마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며, 2014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된다. 이때 함께 했던 공동대표가 바로 윤석열 정권에서 장관급 인사로 활동 중인 김한길 위원장이다. (참고로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한다.) 진보진영 내 공식적인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음에도 당내에서 친문계와 갈등을 지속하다 결국 탈당하게 된다.
2016년 1월 반문계 의원들과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노원(병)에 출마해 재선의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무려 38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안착시켰다. 대한민국 정치사 통틀어 오직 김종필 총재가 이끌었던 자민련(자유민주연합) 만이 전국구 규모의 제3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2017년 3월 박근혜가 탄핵되고, 같은 해 5월 19대 대선이 치러졌다. 이때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는 3위(21.41%)를 차지했다. (당시 대선은 문재인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대선패배의 후폭풍으로 당세가 기울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8년 2월 유승민이 이끄는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한다.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7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하지만, 박원순은 물론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도 패배하고 만다.
안철수 브랜드가 이전 같지 않음이 증명된 선거였으며, 이를 계기로 잠정은퇴를 선언했다. 대권주자를 잃은 바른미래당은 결국 친유승민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보수당(2020년 1월)과 친안철수계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2020년 2월)으로 분당된다. 이후 안철수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본인은 물론 지역구 후보를 아무도 내지 않았지만,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정되는 비례대표를 3명(권은희, 이태규, 최연숙)이나 당선시키며, 콘크리트 같은 고정 지지층이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했다.
③ 세번째 단일화 :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박원순은 서울시장에 3연임(35대, 36대, 37대)을 해냈지만, 성추행 혐의에 휩싸이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한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가 나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전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오세훈이 출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가 추진됐는데, 여론조사에서 밀린 안철수가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안철수는 철수와 단일화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오세훈은 박영선을 꺾고 당선됐으며, 이후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연임에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서울시장에 무려 4번(33대, 34대, 38대, 39대)이나 당선되면서, 보수진영 대표 대권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④ 네번째 단일화 :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
물론 세번째 단일화는 다가올 2022년 3월 치러질 20대 대선 출마를 노렸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상당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워낙 열세에 처했던 상황이었기에 당선 가능성 자체는 매우 낮았다. 정권 재창출을 노린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정권탈환을 목표로 하는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출마했으며, 엄청난 박빙을 이어갔다.
국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는 야권단일화 이슈에 공동정부 운영을 약속받고, 윤석열과 단일화에 합의한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으며, 2022년 4월에 국민의당을 국민의힘에 흡수합병시켰다. 더불어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 나서 3선의원이 됐다. 보수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2023년 3차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서 낙마하며 동력을 잃었다.
사실 당시에도 안철수가 또다시 철수할지 화제가 됐다.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만들기 위해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잃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하게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항간에서는 안철수가 당대표가 되면, 친윤계를 중심으로 분당된다거나 또다시 쿠데타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제는 당적을 옮기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기에 어떻게든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천하람 당협위원장의 완주도 뜻밖이었다. 이렇게 되면 비윤계 표를 독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철수하면 대권주자로서의 생명이 정말 끝나기에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낮은 지지율(24.47%)로 2등을 차지했다.
개인적으로는 안철수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본다. 겨우 공천권 정도를 약속받아 이인제 전의원처럼 정치인생을 이어가느니, 어떻게든 잠룡으로 남아 훗날을 도모하는 게 맞았다. 이후 2024년 22대 총선에서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서 승리하며, 중량감 있는 4선의원이 됐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력 대권주자 중 하나로 여전히 손꼽히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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